- 은평구청의 라면 기부 거부 “40초의 연극을 핑계로 40년 넘게 이어온 나눔을 짓밟아”
- 대통령 관련 이슈는 외부 단체의 ‘문학의 밤’ 중 진행된 40초 연극··· 풍자는 풍자일 뿐

2026년 새해를 맞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가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갈등은 점점 격화되고, 사회 전반에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낙인찍고 배제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치 영역을 넘어 종교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으며, 교회를 향한 정치적 압박 역시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은평구청이 은평제일교회(담임 심하보 목사)의 ‘소외이웃 나눔 기부’를 거부한 사건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논란과 무관한 이웃 사랑의 실천이 행정 판단에 의해 가로막힌 이번 사태는,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물론 공동체적 연대의 의미까지 다시 묻게 한다.
은평제일교회 담임이자 대한민국광역시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심하보 목사는 이번 사안을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억압하려 하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심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2026년 새해를 맞아 바라보는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가장 큰 위기는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해야 하고, 그릇된 것은 분명히 그릇됐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이들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침묵이 반복되면서, 결국 옳고 그름의 기준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
이 문제는 결코 좌·우나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 성경이다. 나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수쿠크법 도입 문제에 대해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보수 정권이어서 지지하고, 진보 정권이어서 반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의 잣대로 판단해 왔다.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면 어느 정권이든 반대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성경은 분명히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동시에 구별의 중요성도 분명히 말한다. 구별 없는 포용은 진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특히 지금 정치권의 행태는 공포 정치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목회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고, 교회가 공적 발언을 할 때마다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교회 길들이기’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념 대립이 극단화된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좌와 우의 대결로 보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와 비진리의 대립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이다.
교회는 세상의 여론이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진리 안에 서 있어야 하고, 진리가 불편해도 그대로 말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말을 골라서 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결국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단순하다. 성경대로 말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정치와 분리된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윗도 사무엘도 선지자가 기름 부어 세웠고, 왕이 잘못하면 선지자가 직접 찾아가 책망했다. 에스더는 신앙적 결단으로 민족과 나라를 살렸다.
나라가 무너져 가는데 교회가 침묵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사회적 불의와 생명 경시 앞에서 입을 닫는 것이 믿음의 모습인가.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현장에 달려간 이들 가운데 80%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신앙 양심에 따라 움직였다.
반대로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중립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다. 교회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집단이 아니라, 사회의 양심으로서 경고음을 내야 할 공동체다.

대통령 관련 연극으로 은평제일교회가 규탄 집회를 겪었다. 왜 이 사안만 유독 문제가 됐다고 보는가?
= 문제가 된 행사는 단순한 ‘문학의 밤’이었다. 교인도 아닌 외부 청년들이 문화 행사를 위해 공간을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교회는 이를 허락했을 뿐이다. 그 프로그램 중 일부였던 연극은 전체 행사 중 40초 남짓한 풍자 코미디였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심지어 화형 퍼포먼스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어떤 대통령은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통령은 비판이나 풍자의 대상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가. 풍자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40초의 연극을 문제 삼아 교회의 정체성과 그간의 사역 전체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40초의 연극을 핑계로 40년 넘은 나눔과 헌신을 짓밟은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평구청이 라면 1,000박스 기부를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
= 목회자로서, 또 한 시민으로서 매우 큰 충격이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웃 사랑의 실천을 거부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평제일교회는 2012년 이후 쪽방촌 라면 나눔을 시작으로 쌀 나눔, 세월호 참사 구호, 빚 탕감 프로젝트(총 99억 원), 수해·산불 피해 지원까지 지역과 국가를 위해 쉼 없이 나눔을 이어왔다.
현 은평구청장 역시 과거 재임 시절 우리 교회를 직접 찾아 전달식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치적 논란을 이유로 기부를 거부했다면, 이는 교회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행정이 정치적으로 판단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리는 은평구청에 라면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이를 막는다면, 피해는 결국 가장 약한 이웃들에게 돌아간다. 이 점에서 이번 결정은 행정의 중립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례라고 본다.
목사님이 말하는 ‘애국 신앙’이란 무엇인가?
= 애국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무너지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까지 모두 무너진다. 공산주의 국가에 신앙의 자유가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죄를 죄라 말하라고 가르치고, 이단을 이단이라 말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차별이라고 몰아붙이면 진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또한 성경은 원수와 적을 구분한다. 원수는 사랑해야 하지만, 적은 분별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적이다. 자유는 감정이 아니라 분별에서 시작된다.
침묵과 발언 사이에서 고민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를 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침묵하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은 평생 양심을 괴롭힐 것이다. 반대로 용기 있게 소리치면 피해자는 살고, 죄인은 잡히며, 내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지금 우리 교회는 분명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다. 성경적 양심에 따라 말했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자유는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지켰다는 확신에서 온다.

